시흥시 원주민의 큰 어른 ‘한상국’ 전 경기도 교육위원회 부위원장 특별인터뷰

‘4-H 발상지인 시흥에 기념탑 건립’이 최근 목표

박영규 | 기사입력 2026/03/29 [22:09]

시흥시 원주민의 큰 어른 ‘한상국’ 전 경기도 교육위원회 부위원장 특별인터뷰

‘4-H 발상지인 시흥에 기념탑 건립’이 최근 목표

박영규 | 입력 : 2026/03/29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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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시니어라이프는 한상국 전 경기도 교육위원회 부위원장(3)을 인터뷰했다.

진정한 시흥의 큰 어른으로 살고 있는 한상국 전 경기도 교육위 부위원장은 80대 중반 나이에도 4H 농민운동에 한국의 발상지가 시흥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시흥에 한국 4H 발상지기념탑을 건립하기 위한 시민 활동을 펼치며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주간시흥은 뼈속까지 시흥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한상국 전 경기도 교육위원회부위원장을 인터뷰하여 그의 활동과 인생 철학을 듣고 정리하여 싣는다.[편집자 주]

최근에 근황은 어떠신지요.

요즘에는 웬만한 옛날 모임에 OB로 나가 참석하고 주로 그냥 집에서 조그맣게 농사일을 하고 있습니다.

경기도 3선 교육의원으로 활동하셨는데 교육의원으로 활동하시게 된 계기나 동기는 무엇이었나요.

제가 도의원을 1991년부터 1995년까지 했어요.
이후 부활이 되어서 3대가 된 거지요. 그런데 지방선거하고 합치는 바람에 3년 임기가 됐지요. 사실 도의원 한 번 더 하려고 했는데 바로 위에 형님이 시장을 나오시게 돼서 형제가 같이 나설 수 없어 그때 3년 쉬었으며 쉬고 나니까 다시 정치 입문하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그때는 학교당 한 사람씩 투표인이 있었을 때로 부천이 워낙 학교 수가 많아 시흥에서는 출마해도 당선되기가 힘들 때인데 시흥에서 저를 밀어주셔서 교육의원에 당선 활동을 할 수 있게 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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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다양한 사회 활동을 펴오셨는데 주요 활동내용을 소개해주십시오.

저는 고향이 시흥이고 학교는 서울서 다니다가 그 중간에 집안이 정미소를 했는데 불이 났으며 그래서 부유한 집안이 좀 형편없이 돼 버렸지요.

그래서 고등학교 졸업하면 가서 바로 돈벌이를 할 수 있는 학교인 수송고등학교를 들어가게 됐어요.
학교가 적성에 맞지 않아 고향에 내려와서 대학교 입시를 준비한다고 했었는데 당시 4H 활동이 있어 동네 고향 친구들하고 4H 활동을 하다가 그 길로 빠져서 4H 면 연합회장부터 그다음에 군 연합회장, 도 연합회장 그리고 전국 회장까지 하게 됐으며 주위에서는 4H 고시를 패스한 사람이고 할 정도이었지요.

이렇게 해서 이제 농촌 운동을 하다가 그다음에 대통령 선거인단에 나와서 당선이 됐지요.

우리 아버님도 면의원으로 하셨는데 옛날에 지방자치 때 우리 아버님도 보니까 무소속으로 야성이 강한 집안이었으며 저도 무소속으로고 도의원 당선됐는데 무소속으로 사실 당선되기가 힘들 때이었지요.

또 대통령을 뽑는 선거인단은 민한당으로 출마해서 당선됐었지요.
그다음에 도의원 때는 공천을 준다고 했다가 안 주어서 무소속으로 출마하게 됐습니다.

도의원인 제 지역 선배 한 분이 계신 데 그분 영향으로 도의원에 출마해서 당선됐지요.
사실은 그때는 무소속으로 당선되기는 진짜 힘들 때이며 선거 운동을 하기가 힘들었으며 치열했지요.

그동안 활동해 오시면서 특히 기억에 남는 활동이 있다면 몇 가지 소개 부탁합니다.

제가 도의원 때는 정말 국회의원들이 못한 거를 일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제가 도 교육청 교육의원으로 우리 시흥시에 공단 배후 점수를 만들었어요.
공단 배후 점수는 시흥시에 와서 근무하는 선생님들한테 승진 가산점을 주는 것으로 선생님들이 가산점이 많은 지역에 근무하려고 하는데 점수를 많이 받을 수 있는 지역이 벽지나 철책선 근처 아니면 도서 지역 등이었습니다.

그런데 시흥은 서울에서도 가깝고 수원에서도 가까운 데인데도 가산 점수가 있도록 추진했는데 당시 이를 만들기 위해 고생을 많이 했지요.

그때 서해고등학교 초대교장 하던 분이 경기도로 들어가서 그 업무를 담당했는데 저 때문에 아주 엄청나게 힘들었을 것이지요.

시흥시에도 시화공단에 배후도시로 가산 점수를 줄 수 있도록 했지요.

그래서 시흥시 정왕동에 좋은 선생님들이 많이 왔으며 이를 계기로 함현고등학교를 비롯해 지역학교가 좋아진 것이며 지역에 좋은 선생님들이 올 수 있는 여건을 제가 만들어 놓은 것이지요.

그것은 제가 교육위원을 하면서 제일 큰일을 한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리고 시화공단과 주거단지를 차단하고 있는 차단녹지를 만드는 일에도 큰일을 했으며 당시 시장에 출마했던 형님이 그때 그 환경청에 근무했었는데 그분 바람에 신천천 예산도 도움을 받았으며 시화공단 차단녹지를 조성하는 데도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또 경기도 보건환경연구원이라는 곳도 직원이 꽤 많은 다른 독립기관 체계로 바뀐 것인데 이것에도 제가 도의원 되기 전에 역할을 했던 것으로 기억에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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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4H 활동에 앞장서며 리더로서 역할 해 오셨는데 4H 소개와 함께 활동하셨을 때 기억나는 내용 있으시면 소개 좀 해주시지요.

4H 운동은 우리 대한민국에서 처음 발생지가 시흥군 이었기 때문에 지금도 관심이 많습니다.

4H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하던 농민운동인데 새마을 운동 전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때 4H가 새마을 운동으로 넘어가 새마을운동본부가 새마을 4H로 이름이 바꾸었으며 지금은 이름을 다시 돌아왔지요.

4H 운동은 마을 농민운동으로 꽃길 가꾸고, 고구마 농사 등을 짓도록 아카시아 나무들을 뽑고 개간하는 일, 도로에 자갈들 골라내는 일, 차가 없던 때 아이들 등교할 때 등하교를 같이 해주는 일 등 지역을 위한 사회운동이며 지역 달월교회에서 야학도 운영했으며 저도 달월교회 야학에 나가 강사로 활동하기도 했지요.

단백질 섭취를 위해 일인 한 마리 토끼 기르기 운동을 펼쳐 토끼를 몇백 마리씩 키운 적도 있으며 4H 농민운동을 하면서 농사일도 많이 배워 군자면에서 고추 묘를 처음 내다 팔 기도 했지요.

4H 운동이 지역 발전에 많은 도움을 주었으며 참여 인구도 많았으며 지금은 학생 4H로 바뀌어 교내 국화꽃 기르기 회의방식개선, 또 해외 연수 등도 진행하고 있지요.

그때는 시흥군이 이제 워낙 커서 서울시의 일부도 우리 시흥군에 있다가 편입이 됐죠.
특히 시흥시는 흑석동과 영등포 아래가 우리 시흥에 있었으며 시흥군에서 당시에 면이 시가 된 게 7개 도시로 됐으며 과천, 광명, 군포, 의왕, 안양, 안산, 시흥시 등입니다.

시흥시가 제일 중심지로 큰 집인데 다 세를 내어 주다 보니 남아있는 자료도 다 없어졌어요. 지금 보니까 지도소에도 옛날 자료들을 보관을 안 해놨더라고 그래서 이제 그걸 다시 찾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시흥군이 시흥시로 승격되어 시흥의 뿌리를 이어가고 있는데 시흥시의 원주민 어른으로 현재 시흥시의 변화를 보시면서 느끼는 소감을 전해 주십시오.

시흥시 원주민들의 지역에서의 역할이 중요할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렇지 못해 안타까우며 이는 시흥시의 인구가 늘어나면서 원주민의 구성비가 낮아진 것도 원인이겠지요.

지역에서 활동하실 수 있는 분들은 계속 지역 활동을 했으면 하는데 일부 참여하는 분도 있지만 대부분 참여를 안 하는 것 같습니다.

어떤 시가 형성되는 데는 원주민들의 역할도 매우 중요할 것으로 보이며 원주민 예우를 해달라는 게 아니라 그래도 오랫동안 여길 지키고 있었던 사람들이니까 역사를 이어가는 데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대개 이사를 오면 터줏대감이라고 이렇게 동네 오래 사시는 분들 쳐다보고 찾아보고 그러는 것인데 저 같은 경우는 우리 시 현역 도의원이 나한테 전화하는 사람이 없어요. 내가 못 나서 그런 책임도 있겠지만요.
근데 이제 워낙 농촌에서 도시화 되다 보니까 고향 생각들을 그렇게 많이 안 하고 지금은 그게 고향이라는 개념도 없어진 것 같아요.

 

아직도 시흥시에 애정을 갖고 계시는데 특히 최근에는 4H 관련하여 한국의 4H 발상지기념탑 설립 사업을 추진하고 계시는데 이에 대한 설명 좀 부탁합니다.

한국 4H의 발상지는 시흥군으로 이를 기념할만한 탑을 적당한 곳에 세우려고 준비 중입니다. 당시 4H는 많은 사람이 참여하고 한때는 전국에 참여 인구가 70만이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내년에 4H 도입 80주년인데 이때를 맞추어 준비하고 제가 경기도회장을 할 때 시흥군에서 떨어져 나간 7개 시 지역에서 주축이 되어 함께 했던 친구들과 도와준다고 하고 해서 지역 지인들이나 선후배들에게 순수하게 모금으로 기금을 마련하여 준비하려 합니다.

발상지인 시흥시에 적당한 곳에 기념비를 세워볼 생각입니다. 시흥시에도 역사적인 상징물로 관심을 가져준다면 시흥시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시흥시의 원주민으로 지역을 지키고 계시는데 어렸을 적 시절의 추억으로 기억에 남는 일을 소개해주시지요.

우리 방앗간에 불나서 불이 나서 망했다고 그랬는데 그전에는 이 5살 때 인천에서 유치원을 다니다가 서울에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 집 놀러 오면 그땐 쥐불놀이를 많이 했는데 마당 가운데에다 수수깡을 베서 세워 놓은 안에는 바람이 안 들어와 쥐불놀이 깡통에 있는 불붙이며 놀다 불을 내서 도망을 쳤으며 나중에 잡혀 크게 야단맞았지요.
그때만 해도 지금 군자농협 농업경제사무소에 있는 거모동에 우리 농장 있는데 그 동네가 한 100여 호 가까이 됐고 이쪽 죽율동은 한 50호 정도밖에 안 됐는데 현재 고속도로 밑에 웅덩이에서 여름에는 수영하는 하다가 도망가고 했던 일들이 생각납니다.

그 시절만 해도 봄이 되면 논에 물 가둬놓으면 우렁도 줍고 그랬는데 지금은 농약 등이 많아지니까 그런 게 없고, 야산에서 잔대라고 하는 거 캐 먹고, 여기 저 소매 놓는 마당에서 소똥구리 이런 거 잡아서 놀고 그럴 때니까 그때만 해도 자연하고 접하면서 놀 때가 많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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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의원님께서는 시흥시의 원주민 중의 어른으로 살아오시면서 시흥시의 장점은 무엇이라고 생각을 하시는지요.
우선 서울과 가깝다는 것과 넓다는 것이 큰 장점이지요.

시흥시가 시장들이 조금만 신경을 쓰면 좋은 것 같은데 예를 들면 제 생각에는 관광사업으로 물왕저수지에서 내려오는 물길을 따라 갯골, 월곶, 오이도를 잇는 열차 같은 것을 연결시켜 놓으면 좋지 않을까 합니다.
농협 등에서도 시흥지역 특산물이나 농산물을 농민들이 가져다 팔 수 있는 장소를 오이도를 비롯해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여러 곳 만들어 주면 관광객도 좋고 농민들에게도 큰 수입원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시흥에 지도층들이 조금만 잘해도 주민들이 잘살 수 있지요.

지역에 리더들이 많은 장점을 잘 살려야 되겠지요.

시흥은 크게 단점이 없는 곳이며 지역에 그린벨트가 많은 것도 오히려 장점이 될 수 있으며 개인적으로는 고압선 지나가는 것 등으로 일부 주민들이 큰 피해를 보고 있는데 해법에 신경을 써 주어야 합니다. 땅값도 떨어지고 빨리 조치를 해 줘야 할 것입니다.

 

시흥을 이어갈 시흥시민들에게 애정 어린 당부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시흥시민들이 지금 내가 사는 곳이 고향이라고 생각하고 사는 동안만이라도 그런 생각을 하고 살면 좀 서로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또한 정치적인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은데 지역색이 없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시흥시가 살기 좋은 지역이 되도록 모두가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또 시흥시민들이 지역 언론을 많이 볼 것으로 보며 쉽지는 않겠지만 주간시흥이 잘 되어서 지금처럼 좋은 일 많이 하고 좋은 이야기 많이 써주시고 잘못되는 것은 지적하는 지역 언론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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