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첫눈처럼
노자규의 골목이야기
K-시니어라이프 | 입력 : 2025/02/13 [09:24]
사랑은 첫눈처럼
서울의 저 야경이 멋진 것은 고단한 삶을 이어가는 누군가의 야근으로 이루어진 거라는 어느 잡지에서 본 글귀를 떠올리며
내 마음 밖으로 내려다보이는 불빛들을 바라보다 별들이 물어봐 준 나의 하루를 마감하려 사무실 문을 열고 걸어 나오고 있었다
머리 풀어 헤친 어둠 사이로 어둠에 녹아내린 밤을 아쉬워하며 하얀 눈송이가 하나둘 내리는 걸 보면서
'첫눈이구나.."
떨어지는 눈물처럼 어둠이 먼저와 앉아있는 거리에 손님처럼 찾아온 하늘에 핀 눈꽃을 보며 서둘러 버스에 몸을 신고는
차창밖으로 제 몸 부딪혀 사라지는 눈들을 보며 그리 오래지 않은 기억 하나를 떠올리고 있었다
"우리 당분간 헤어져 살아보자"
"그래도 돌아올 마음이 안 생기면....?"
"우리의 관계는 더는 이어갈 이유가 없겠지"
추억은 눈처럼 하얗지만 않다며 눈물처럼 번진 차창에
썼다 지운다
아내의 이름을
산동네 언덕에 멈춰선 버스 정류장 바로 앞에는 조그만 편의점 하나가 있었고
그사이 계단을 오르다 보면 나타나는 널따란 빈터에 벤치가 놓여있는 곳으로
피폐해진 하루를 보상받으려 오늘도 어김없이 커피한 잔을 들고 나무를 찾아가는 바람처럼 걸어가고 있었다
바람을 접어 만든 달과 함께..
"아니 저게 뭐지?"
하얀 눈밭에 파란 불빛으로 올려대는 휴대전화기를 보며 다가간 나는
"여보세요?"
"어..누구세요?
이건 저희 어머님 휴대전화기인데....
길가에 떨어져 있는 걸 주웠다는 말부터 차근차근 주고받던 말들은 내가 있는 이곳으로 지금 찾으러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끝이 나고 있었고
도착했다는 전화가 올 때까지 벤치에나 앉아 있으려 다가가던 내 발걸음을 멈춰 세운 건 텅 빈 가슴속을 채우려는 듯
세상속 불빛들을 하얀 물감으로 물들이고 있는 걸 바로보고 있는 할머니 한 분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언제가의 나처럼.
저,할머니,
주운 핸드폰의 주인이 아닐까 싶어 던진 말에도 흔한 눈빛조차 줄 수 없다는 듯
멍하니 그 모습만 바라보고 있던 할머니가
서울이 온통 눈꽃왕국이 된 것 같네요"
그제서야 인기척을 느끼신건지 건네는 살가운 말에
"여기 자주 오시나 봐요?"
"하늘나라가 간 우리 영감이랑 첫눈이 오면 늘 오던 곳이라우'
행복이 눈처럼 온다는 표정으로 할머니의 눈은 반가움으로 가득 차 있었고
서울야경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비워진 마음에 고인 말로 서로의 삶 깊숙한 곳까지 한 칸씩 흘러가고 있었다
따르릉...
함께여서 얻는 행복 하나면 충분하다며.
사랑은 저 첫눈처럼 처음 가졌던 그 마음을 수북이 쌓아가는 거라는 말을 남기고
아들과 며느리의 손을 잡고 멀어지는 할머니가 남긴 발자국을 보며 난 아내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다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
펴냄/노자규의 골목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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