숟가락 두개
노자규의 골목이야기
K-시니어라이프 | 입력 : 2024/10/23 [10:07]
숟가락두개
햇살조차 들지 않는 구석진 자리에
언제부터인가 할머니 한 분이 세월에 고여버린 아픔을 멍한 눈망울에 걸어둔 채
어둠을 뒤집어쓴 어린 별들이 비춰주는 거리에서 오고가는 사람들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할머니가 어디에 사는지... 자식은 있는지 아는 이는 없었지만
지친 바람을 안고 매일 왜 그렇게 앉아만 있는지 주인아저씨는 알고 있었기에 할머니를 처음 본 그때를 떠올려보고 있었습니다
"임자. 좀 퍽퍽 떠서 먹어?"
"영감이나 많이 퍼서 드세요"
허기진 거리를 돌다 배고품에 들어온 식당에 앉아서 지금 이 시간이 최고의 행복이라는 듯 미소 짓던 할아버지가 먼저 한 숟가락을 입에 떠 넣으면 그제야 할머니도 숟가락을 자신에 입에 떠넣으며
어느덧 두개의 숟가락이 말 없는 행복으로 서로의 빈가슴을 데워줘서인지 물 한그릇까지 사이좋게 나눠 마시고는 계산을 하려던 할아버지에게
"좀 전에 옆 테이블에서 먹던 젊은 부부가
두 분이 너무 다정스럽게 드셔 보기 좋았다며 계산을 하고 갔어요'
할아버지는 늘 그렇게 국밥집 주인이 거짓말을 한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한사코 그럴 수 없다며 땡별에 금 간 주름 사이로 버티시는 모습에
"그럼 오늘도 천 원만 받을게요"
고맙다는 말을 굽어진 등에 실어 전하고는 국밥집 문 앞에 우두커니 세워져 있는 리어카 위에 박스 더미를 이리저리 옮겨 할머니를 앉히고는 담요로 온몸을 감싼 뒤에야
"임자.... 이제 출발 혀
어둠이 먼저 걸어와 앉아있는 거리를 달과 별처럼 걸어가시곤 했습니다
리어카에 할머니를 왜 싣고 다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도시가 잠든 어둠을 찾아 거리로 나온 노부부는 고단함을 달빛에 걸어놓고는 아침이 물들기까지 이곳저곳을 찾아 헤매며 폐지를 줍다가
그날도 때늦은 한끼로 하루를 버티기 위해 거리에 동구는 주름 깊은 바람을 등 뒤에 감추고
식당 문을 열고 들어와서는 언제나 그날처럼 국밥 한 그릇에 숟가락 두 개로 행복을 퍼 나르던 시간을 지나
"임자, 여기서 조금만 기다려. 내가 가서 얼른 빵꾸 때우고올 테니..
국밥 집 주인에게 사정 이야기를 하고도 할머니를 그 자리에 앉혀 놓는 게 마음이 안 놓여서인지 식당 밖 창문으로 몇 번이나 들여다 보고는
깡마른 두 손을 휘저어봐도 텅 빈 먹빛 공간뿐인 거리를 채울 수 없는 고달픔을 바퀴삼아 달려간 그날이
할아버지를 본 마지막 모습 이었다는 걸요.
할머니는 주인아저씨가 놓아둔 국밥 한 그릇이 놓인 탁자에 앉아 하루... 이틀.
술한 밤을 건너 가을이 찾아온 오늘도 할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숟가락 두 개는 나란히 꽂아놓은 채..
펴냄/ 노자규의 골목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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