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양말
노자규의 골목이야기
K-시니어라이프 | 입력 : 2024/09/12 [08:32]
아버지의 양말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빚어진 가난이 싫었던 엄마는
새벽이슬처럼 집을 나가버렸고
다섯 살이 된 나에게
엄마 몫까지 해야만 하는 아버지와
단둘이서 살아야만 했습니다
떠난 뒤 아파했을 슬픔을 감추고
매일 아침 텅 빈 채 걸어 나가는
아버지를 보며 어린 저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나온 적이 나왔지만
그런 아버지는
굳건히 일용직 공사판을 전전하며
일을 하시다가 떨어진 철근에
두 발가락을 잃고 나서부터
정류장 옆에서 구두수선 일로
재 부러진 하루를 버티시며
저를 키워 주셨습니다
몰래 감춰둔 오랜 기억 속에
지워질 수 없었던 아픈 들을 지워준
아버지가 있었기에
아무렇지 않은 듯
자랄 수 있었던 내가
유일하게 아버지에 해줄 수 있었던 건
아버지가 신을 양말 안에
신문지를 구겨 넣어 신겨 드리는
일이었는데
늘 그런 내 모습을 보며
하루를 살 용기를 다 얻었다는 미소로
아버지는 걸어 나가곤 하셨습니다
발가락으로 전해지는 통증에 밤새 잠 못 들던 아버지가 아들이 신겨준 양말을 신고 새벽별 놓인 길을 따라 출근을 하는 모습을
잠이 덜 깬 게슴츠레 눈으로 바라보며
지나던 시간들이 되풀이되며
참 많이도 흘러가던 어느 날 새벽
“진수야….
우리 진수 아직 안 일어났나?“
밤새 친구들과 노닥거리다
새벽녘에 들어와 잠든 그날
자명종처럼 울려대던 그 말이 너무나
듣기 싫었던 나는
이불을 덮어썼다 마지못해 일어나
못마땅한 표정으로 양말을 신겨드리는 일이 있고 난 얼마 뒤
우릴 버리고.떠난 엄마가 밉지도 않은지 엄마가 남기고 간 버선 같은 그 양말이 제일 편하다며
오늘도 부뚜막 옆에 걸쳐 놓고
초저녁 잠 드신 아버지가 미워
그 양말을 대문 밖 쓰레기통에 버리고는 난
학교로 뛰어가고 있었습니다
엄마의 흔적이 보기 싫다며….
학교에 와서 그 생각을 잊으려 친구들과 떠들고 놀아 봤지만
맨살로 버티실 아버지가 자꾸만 생각나 말 못하는 우체통처럼 앉아만 있던 나는
“누가 가져가신 않았겠제….”
비가 내리는 짙은 어둠을 헤매며
애달피 떨어지는 잎새가 된 채 뛰어와
집 앞 쓰레기통을 다 뒤져 보았지만
아버지의 양말은 보이질 않았습니다
축 늘어진 어깨를 내밀고
무너질 듯 서 있는 대문을 열고 들어서는 내 눈에
내가 버린 그 양말이
뽀얀 얼굴을 한 채 부뚜막 옆에서
잠들어 있는 걸
손등에 남은 눈물을 지우고 있을 때
“진수야…?”
“예 아버지….”
“비 맞고 서 있지 말고
얼른 드가서 밥 머꺼라”
고개만 숙인 채
밥만 퍼 넣고 있는 내 숟가락에
말없이 반찬을 얹어주는 아버지의 얼굴을
차마 올려다보지 못하고
난
하고픈 말을 굵은 눈물로
밥그릇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해바라기
그림자가 밤을 따라 물들이는 길을
오던 날들이 2년이 되어가던 날
난 서울로 올라와 대학 생활을
하게 되었고 아버지와 난 그렇게 멀어진 듯 했습니다
…. 따르릉….
“내 아들 진수가…?
아비다“
“예 아버지...”
“밥은 잘 먹고 댕기나...
어디 아픈 덴 없고?“
“예 아버지”
예…. 아버지란 말만 되풀이하다 끊어진 전화기를 붙들고
더 하지 못한 말을 눈물로 두 손 가득 담아내던 나는
“저 사장님예….
오늘 부산 갈 일이 생겨 아르바이트를
못 나갈 것 같심더“
둥그런 달이 따라오는 밤하늘을 따라
눈물 대신 행복을 주신 아버지가 계신
그곳으로 난 달려가고 있었고
한 묶음의 양털 양말을 안고 있는
이 두 손으로
아버지의 발을 씻겨 드리며
말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아파하던
내 심장을 찾아준 사람
그런
아버지를 많이 사랑한다고….
펴냄/ 노자규의 골목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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