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아버지
노자규의 골목이야기
K-시니어라이프 | 입력 : 2024/08/09 [08:20]
♤ 친정아버지 ♤
어제는 찡그린 해님이 오늘은 방실거리며 나와 있는 아침 그림 속에서 금방 튀어나온 버스가 멈춰 섰다 떠나는 정류장 옆 한 평도 안 되는 사각 통 안에서
구두를 수선하는 일로 평생을 일구어 오신 아버지는
사위가 하는 사업이 망하는 바람에 집을 팔고 딸네 가족과 한 지붕 아래 함께 살게 된게 겨울바람에 닫혀버린 창문처럼 열릴 줄 모르는 제 마음과는 달리
“현명한 사람은 과거를 출발선에 놓는 사람이데이 난 개안으니 신경 쓰지 말고 우짜든동 몸만 성하면 되는기다”
“아버지 저희 때문에...”
“다시 태어나면 가난한 아버지 딸 하지 말고 부잣집 딸로 태어나래이“
“......“
“아버지도 다시 태어나면 큰 회사 사장님으로 태어나세요“
“내는 다시 태어나도 ... 우리 딸 아버지로 태어나고 싶데이“
“다음생에는 딸내미 때문에 고생 안 하시며 행복하게 사셔야죠"
“니가 고생했지 못난 애비 만나가꼬"
부자보다 사장보다 내 딸 아버지가 되고 싶다며 대못같이 말씀하시고
막걸릿잔에 비친 달을 떠서 목구멍에 밀어 넣으시는 아버지
다음에 태어날 땐 예쁜 꽃으로 태어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살라는
밤도 차마 막지 못하는 아버지와의 이야기는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8월이 그려진 옥상에 앉아
잠이 덜깬 달님과 함께 나누는 술 한잔이 아버지와 나에겐 약이 되고 지우개가 되었는지
먼저 달님을 베고 잠드신 아버지를 내려다보며 어릴 적 지난 이야기 하나를 떠올리고 있었습니다
추운 12월의 겨울밤
버스정류장 옆에서 꼬마 불 밝히고 붕어빵을 굽고 있는 포장마차 앞에서 길다랗게 줄을 서 있는 사람들 사이로
하루 일로 축 늘어져 보이는 두 어깨를 밤하늘에 감추고 서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창피해
모른 척 달려 집에 도착한 한참 뒤에도 들어오시지 않는 아버지
“은희야... 니아버지 오다가 골목 안 점방에서 약주 한잔하고 오시는 거 아이가? 니가 한번 나가봐래이“
“몰라 몰라. 난 잘끼다“
엄마가 축 늘어진 보라색 스웨터를 걸치고 나서려는 그때
비지시 문을 열고 들어오는 아버지의 두 볼은 빨갛게 익어있었습니다
“뭐한다고 이제 오는교?”
“붕어빵 사온다꼬”
“붕어빵은 누가 먹는다꼬 추운데 두 시간이나 떨었습미꺼“
라며 말하는 내 앞으로 붕어빵이 든 봉투를 불쑥 내밀어 놓으시며
“니 줄라꼬..”
배고픔과 추위를 참아가며 사 온 붕어빵을 보며 금방이라도 떨어지려는 눈물을 애써 붙들어 놓고 있는 속눈썹을 보이기 싫어
머리까지 덮어쓴 이불속에서 붕어빵에 메인 목구멍을 눈물로 씻어 넘기던 그날을......
겨울바람에 튼 두 볼이 노을처럼 물들어 있는 얼굴에 발라 드리는 이 로션으로 아버지의 얼굴에 주름이 펴질 수 있기를 바래보며
오늘 하루도 아버지의 깊고 푸른 바다에서 머물다 간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계셔서 오늘도 행복했었다며...
다음 날 저녁
달빛을 걸어놓은 대문에 문패가 걸려있던 자리가 움푹 파인 채 비어있는걸 바라보고 서 있는 아버지에게 말없이 다가간 나는
“아버지... 돈벌어서 문패 꼭 달아 드리게예“
“인자는 내 이름보다 우리 김 서방 이름을 다는 걸 보는 게 이 아빈 더 행복할 것 같데이“
햇살 같은 말을 건네며 들어가시는 뒷모습에 쥐어진 봉투를 보며
“근데 웬 붕어빵이에요?”
“니 줄라꼬”
아버지 생신이라 드린 돈과 함께 내미시며
“어제보니까네 김서방 트럭에 물건들이 없더라 “
푸짐하게 놓고 장사해야 손님들이 오는 거라며
방문을 열고 들어가시는 천국 같은 뒷모습에다 눈물로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예.. 내년엔 돈 많이 벌테이니까네 그땐 꼭 받으셔야 함미데이....“
라고
내일은 가고 없는 봄을 그리워하는 겨울이 그려진 버스정류장에서 노을빛 얼굴로 달려오시는 아버지를 기다리려 합니다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막걸리 한 병을 들고서....
“뭐한다꼬 나왔노 김서방 밥이나 챙겨 주제 그라고 막걸리는 왜 샀노?"
저는 흐뭇한 미소를 달빛에 감추고 말씀 하시고 계신 아버지를 보며 말하고 있었습니다
“아빠 줄라꼬....”
<저작권자 ⓒ K-시니어라이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