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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달할머니

노자규의 골목이야기중에서

K-시니어라이프 | 기사입력 2024/07/09 [09:53]

반달할머니

노자규의 골목이야기중에서

K-시니어라이프 | 입력 : 2024/07/09 [09:53]

 

 

반달 할머니

 

(((((여보…. 합격이다.)))))

20년간 다니던 직장이 도산하고

졸지에 실업자가 된 남편은

낮엔 해를 친구 삼아

밤엔 달을 이웃 삼아

30여 곳에 이력서만 넣고 다니며

취업 문을 두드린 결과

드디어 합격이라는 영광을 거머쥔 게

자랑스러웠기에

온 동네가 떠나갈 듯 소리치고는

시댁과 처가댁의 응원과 격려를 받으며

드디어 출근하게 된 첫날

“여보…. 여보 잘할 수 있제?“

”오늘부터 그 회사는 내가

확 접수했뿔끼니까네 걱정 마라““

”너거들 뭐 하노

아빠 첫 출근이신데….“

대학을 졸업해 취업을 준비하는 딸과

군에서 휴가 나온 아들의 열열한

배웅을 받으며 출근한 남편

"죄송합니다….

동명이인이 있어서 저희 직원이

착오가 있었네요"

그날 그 길로

저는 소선생(소주)과 친구가 되어

새벽을 달리다 들어온 모습에

”당신….

오늘 거하게 환영식 받았나 보내“

실망할 아내의 얼굴을 보는 게

죽기보다 싫어 대답 대신

진한 술내를 풍기며 잠든 척 연기를

했지만

몇 시간 후

다가올 아침을 어떻게 맞을지

밤새 궁리만 해대다

아내를 실망 시킬 수 없었던 남편은

마트에서 카트 정리를 하는

일용직 알바를 하고는

컵라면 하나로 허기를 달랜 뒤

해 저문 저녁 대리운전 사무실을

기웃거리다

”꼬르륵“

다시금 울려대는 배꼽시계에

핸드폰을 열어보니 저녁 아홉 시가

가까워져 오고 있었습니다

 

 

”이제 마칠 시간 임미데이“

”알겠씸미더”

“아직 저녁을 못 드셨슈?”

“아. 네 일하다 보니

저녁 먹을 때를 놓쳤뿐네예”

“그럼 거기 아무 데나 앉으슈

남은 국수로 한 그릇 후딱 말아다

드릴 테니….”

뛰어도 달려도 제자리걸음이 돼버린

인생을 삼켜버릴 듯

국수 국물을 들이키고 있는 남자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고 있던 주인 할머닌

“아이고 맞네…. 맞아

그때 그 사람이 맞구먼”

남편도 그제야 주인 할머니가

낯이 익다 싶었는데 그날 버스 정류장에서

만난 그 할머니란 걸 알게 되었는데요

“손자는 유치원에서 기다리고 있고

선생님은 부모님 생신이라 퍼떡 가야 한다고 하고…. 그때 참말로 고마웠심더.“

“빨리 가셔서 손자를 만나셨다니 다행이네예“

“다 손님 덕분이라예”

그때 워낙 겨를이 없어 고맙다는 인사도

제대로 못 했다며 내미는

소주 한잔을 받아든 남편은

자폐증인 손자를 홀로 돌보는

할머니의 애간장 녹는 소리가 아직도

들려오는 듯 그날의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었답니다

“발만 동동 구르던 그때 손님이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지요“

남편이 서 있는 자리를 양보하고

맨 뒷줄로 가준 남편 덕분에

때마침

온 좌석버스에 몸을 실을 수 있었던

지난 고마움에 시간 가는 줄 모르던

할머니와

두 다리로 걸어왔던 지난 이야기를

소주잔에 실어 보내며

땡벌같은 하루를 마감하던 두 사람은

”그럼 좋은 직장 구할 때까지

우리 식당 주방에서 일해보는 건

어떻는교?“

자네처럼 마음 따뜻한

사람을 찾고 있었다며

그날의 그 인연으로 다시 만나

시곗바늘처럼 일하던 어느 날

“ 니 나랑 오늘 같이 갈때가 있데이”

할머니는

한 달에 한 번

다녀오시는 곳이 있었는데

오늘은 그곳을 함께 가자는 말에

“ 이 밤에 어딜 가실라꼬예“

따라나선 걸음이 멈춰 선 곳은

쪽방촌이 모여있는 골목이었는데

남편은 할머니를 따라 골목 구석구석을

돌며 먹거리와 속옷들을 문 앞에 두고

나와서는

“할머니….

낮에 뵙고 드리시지 왜??“

 

 

“뭐 대단한 거라고 동네방네

애고 펴고 주겠노 그라고 우리 나이쯤

되면 남이 주는 걸 받는 게 숙쓰러운

나이데이“

“할머니도 넉넉지 않으시잖아요”

“그래도 나는 저 분들에 비해

쪼매 나은 형편이 주어진 거에

감사하며 살아야 되는기다"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행운이 주어진 것뿐이라는

할머니 말에

“다들 그 행운을 지키려 아둥바둥

사는 거 아임미꺼?“

“그만큼 누렸으면 돌려줄 줄도 알아야

하는 게 좀 더 가진 사람의 태도가 아니겠나“

몸은 고되지만,

마음 부자가 된 것 같은 행복감에

둘만의 세상을 그리다

한적한 벤치에 앉은 두 사람은

밤하늘을 밑천 삼아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었는데요

“저기 저 반달같이 살아야 한데이“

“ 할머니….

꽉 찬 보름달처럼 살아야지예“

애미 애비없는 손자와 같이

희망이 절망으로 바뀐 세월을 살아오신

할머니는

“꽉찬 둥근달은 줄어들 일만 남았지만도

저 반달은 둥근 달이 되기 위해

열심히 차올라 안가나 인생도

저 반달처럼 살아야 되는기다“

더 깊은 이야기는

죽어서 신께 물어보라며

웃고 계신 반달 할머니의 따사로움을

어느덧 닮아가고 있었습니다

내 손에 없는

내 것만 찾다 가는 사람들 속에

이 세상이 아름다울 수 있는 건

내 손에 있는

내 것을 나눠줄 줄 아는

하루를 사는 따뜻한

자네 같은 사람을 찾고 있었다며

“자네가 이 국숫집을 맡아서

해보거라”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심미꺼?”

“나도 이제 좀 쉬고 싶다

손주 놈도 도시보단 시골에서

사는 게 좋을 듯 해서 말이다….“

할머니는 손자가 가지고 놀던

주사위를 던져 보이며

말을 이어가고 있었는데요

"뭔 숫자가 나왔노?"

"1이네예"

"1 밑에있는 더 큰 숫자 6을

찾아가는 게 인생이데이"

내일은

우리의 오늘이 만들어간다며

잠든 별들이 들리지 않게

소곤소곤 들려주고 있었습니다

남을 돕는 그날을

내가 살아갈 나의 첫날로

잡아보라며…..

▲     ©K-시니어라이프

 

펴냄/노자규의 골목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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