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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한 소원들

평범한 일상이 기적이라는 것을 …….

박성규 | 기사입력 2024/06/30 [18:49]

간절한 소원들

평범한 일상이 기적이라는 것을 …….

박성규 | 입력 : 2024/06/30 [18:49]

평범한 일상이 기적이라는 것을 잊지 않아야겠다.

 

글/노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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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의 글을 읽었다.

살아있다는 것, 참으로 소중하다.

살아 있다는 것은 그렇게 귀중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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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간절한 소원들>

- 엄상익 변호사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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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소아마비인 친구가 있다. 가난했던 대학 시절 그는 버스비가 없어 목발을 짚고 일곱 정거장을 걸어 다녔다. 그는 나이 칠십이 되니까 하루가 다르게 남은 다리의 힘이 빠져나간다고 했다. 일이 년 후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휠체어에 앉을 운명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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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악착같이 나머지 시간을 한쪽 다리와 지팡이로 걷고 있었다. 그는 내게 자신이 태어나서부터 걷지 못하는 이유를 불교의 윤회를 빼놓고는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전생에 자신이 죄를 진 데 대한 응보라는 생각이었다. 그는 착하고 마음이 넉넉한 사람이다. 원인을 전생의 죄라고 하는 걸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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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연수원 다니던 시절 한쪽 다리가 불편한 여성이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눈에서 푸른 불빛이 나올 정도로 열심히 공부했다. 그리고 판사가 됐다. 어느 날 판사실을 찾아간 내게 그녀는 말했다. 양다리만 성하다면 차라리 파출부나 창녀가 돼도 좋겠다고. 그들은 걸을 수만 있다면 더 큰 복은 바라지 않겠다고 했다. 그들에게 걷는다는 것은 놀라운 기적의 영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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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성마비로 육십 평생을 누워서 지낸 여성을 변론한 적이 있다. 몸은 마비됐지만, 머리가 비상하고 정신도 또렷했다. 그녀는 크로스비 여사같이 전 기독교인의 사랑을 받는 찬송가를 만든 시인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자각하고서부터 자살하고 싶어도 혼자서 죽을 능력이 없어 살아왔다고 내게 고백했다. 약국으로 걸어갈 수도 없고 강물에 빠져 죽을 수도 없다고 했다. 혼자 방안에서 일어나 목을 매달 수도 없었다. 그녀는 말도 못했다. 한마디 하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한다. 그래도 말은 되어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일어나 앉을 수만 있어도 더 큰 복은 바라지 않는다고 했다. 한 달에 한 번 와서 그녀를 돌보던 여자는 혼자 화장실을 가고 목욕할 수 있는 게 큰 복인 줄을 전에는 몰랐다고 내게 말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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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잘 아는 영화감독은 어느 날부터 갑자기 소리가 사라졌다. 들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의사들은 귀의 기능에 이상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도 그는 아무것도 듣지 못하게 됐다. 그를 만났을 때 공허한 웃음을 흘리면서 그는 내 입술을 보았다. 내가 말하는 의미를 알아채기 위해서였다. 옆에 있던 그의 부인은 내게 남편이 다시 들을 수만 있다면 더 큰 복은 바라지 않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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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교 시절 혜성같이 나타난 맹인 가수가 있었다. 가요제에서 여러 번 수상 경력이 있는 타고난 뮤지션이었다. 그는 맹인이라 대중의 마음을 불편하게 할 수 있다고 방송 출연을 거부당했다. 세월이 흐르고 그는 바닷가 피아노가 놓인 자신의 방에서 조용히 늙어가고 있었다. 아마도 그는 볼 수만 있다면 더 큰 복은 바라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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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 선고를 받고 죽음을 기다리는 죄수와 편지로 소통했던 적이 있다. 그는 암흑의 절벽에 매달려서라도 살 수만 있다면 행복할 것 같다고 했다. 무기징역을 받은 사람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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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다는 것은 그렇게 귀중한 것이 아닐까.

대한민국 최고 부자인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전 재산을 줄 테니 대신 죽어달라고 하면 그럴 사람이 있을까. 아마 없을 것이다. 산 같은 재산도 가난에 허덕이는 한 사람의 생명보다 가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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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이 가난하다고, 일자리가 없다고, 늙었다고, 외롭다고 불행해 하고 있다. 보고 듣고 걸으면서 존재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날마다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걷지 못하고 곧 죽어가는 누군가의 애잔한 소원을 이루고 날마다 그들이 바라는 기적이 일어나는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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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간절히 기다리는 기적들이 내게는 날마다 일상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걸 모르고 있었다. 젊음이 지나간 후에야 그걸 비로소 아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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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 시력을 잃고 나서야 건강한 눈으로 책을 읽던 그 시절이 행복이라는 걸 깨달았다. 놀랍게도 나는 누군가의 간절한 소원들을 젊어서부터 다 이루고 있었다.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날마다 깨닫는다면 우리들의 하루는 기적이 아닐까. 그리고 우리는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 각자의 삶, 각자의 인생, 자신을 사랑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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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프로필>  

전 현대중공업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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